임진왜란 세자 광해군 재평가


광해군은 인조반정에 의해 폐위당했지만 그가 임진왜란 당시 했던 공적은 인정해주어야 합니다.

임진왜란 당시 세자 광해군은 왜 재평가받아야 하는가에 대한 설명을 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광해군은 임진왜란 발발 이후 선조가 한양을 버리고 몽진을 하자 몽진 대열에 합류하여 피난길에 오르게 됩니다.

하지만 평양성에서 선조는 광해군을 세자로 책봉하고 분조를 설립하라는 명령을 받게 되는데요.

선조의 명령을 받은 세자 광해군은 이천에 분조를 설립하고 그곳을 전시 야전군 총사령부로 지정하게 됩니다.

또한 세자로 책봉된 광해군이 한양 근처인 이천으로 오자 백성들은 세자 광해군을 환영해주었다고 하는데요.

당시 백성들은 광해군이 세자로 책봉되었고 분조가 설립되었으니 금방 전쟁이 끝날 것이라고 생각했었다고 합니다.

또한 광해군은 당시 조선 야전군 총사령관을 지낸 서애 류성룡과 이항복 등을 분조에 두고 그들의 의견을 종합하여 결론을 내기도 했다고 하는데요.

이러한 광해군의 의견을 종합한 최종 결정은 조선군의 보급체계와 명령체계가 확실시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합니다.

또한 광해군은 전국을 돌아다니며 백성들에게 의병 봉기를 하라고 독려하였고

광해군의 분조가 안정화를 찾아가자 전국에서 의병들이 봉기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또한 일본 태합기에 의하면 임진왜란 당시 의병 조직들의 게릴라는 일본군에게 엄청난 타격을 주기도 했다고 기록되어 있다고 하는데요.

광해군은 임진왜란 당시 조선 측 군 통수권자로 없어질 위기에 처한 조선을 구한 지도자라고 할 수 있다고 합니다.

또한 광해군은 선조의 몽진으로 인해 땅바닥을 치고 있던 민심을 다시 끌어올리는 성과를 달성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임진왜란 이후 집권한 광해군은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할 행동은 했지만 그가 임진왜란 당시 했던 업적은 재평가받아야 한다는 것인데요.

폐위된 왕으로 기록되어 있는 광해군은 임진왜란 당시 조선군 군 통수권자 세자 광해군으로써 평가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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