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역사도시 top10


1. 로마(Roma)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속담에서 느낄 수 있듯이, 로마는 유럽의 문명과 세계문명의 지도자적인 역할을 하였으며, 오늘날에도 종교적인 제국의 중심지로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198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로마 유적지는 영화<로마의 휴일>에 나오는 트레비분수와 진실의 입, 그리고 콜로세움 원형극장과 폭군의 대명사 네로황제, 그리고 사치와 향락의 상징인 카라칼라 대중목욕탕을 떠올리게 된다.

로마의 상징 “콜로세움”

특히 로마를 상징하는 “콜로세움”은 당시로서는 서기 72년 베스파시아누스 황제 때 건축을 시작하여 8년 뒤인 서기 80년에 완공되었다. 콜로세움은 당시로서는 상상할 수조차 없을 정도로 큰 건축물이었다. 5만∼5만 5000명이 들어갈 수 있는 규모로 둘레가 527m에 긴 쪽의 길이가 188m이고 짧은 쪽도 156m나 되었다.

4층으로 이루어진 콜로세움은 각 층마다 각기 다른 양식으로 꾸며진 건축물로도 유명하지요. 1층은 도리아 양식, 2층은 이오니아 양식, 3층은 코린트 양식의 기둥과 원형에 가까운 아치로 장식되어 있다. 출입구와 계단은 많은 사람들이 쉽게 빠져나갈 수 있도록 건설해 놓았고, 황제와 귀족을 위한 통로를 따로 마련해 놓았으며, 좌석도 신분에 따라 구분되어 있으며, 거대한 바위 위에 축대를 쌓고 다시 그 위에 풍부한 점토질을 다진 뒤 지었기 때문에 지진으로 발생하는 진동을 흡수하도록 설계되어있다.

로마제국 사치와 향락의 상징 “카라칼라 욕장”

로마인들은 목욕을 무척이나 즐겼다. 로마 시내는 물론이고 로마인들이 다스리던 곳에는 어김없이 목욕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을 지었다. 고대 로마인들에게 목욕탕은 오늘날처럼 단순히 몸만 씻는 곳이 아니라 여러 가지 문화 생활도 즐길 수 있는 곳이었다.

로마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잘 보존된 목욕탕은 카라칼라 욕장은 1,500명이 동시에 목욕을 즐길 수 있을 정도였으며, 카라칼라 욕장에는 미술관, 도서관, 회의실은 물론이고 정원과 운동장, 음식과 음료를 판매하는 식당과 상점까지 갖추어져 있었다고 한다.

폭군을 상징하는 “네로황제”

로마제국의 제5대 황제(재위 54~68). 아우구스투스로 부터 시작된 로마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왕조의 마지막 왕이었으며 로마황제를 대표하는 인물로 인식된다. 16세에 황제가 되어 개혁적인 정책을 추진했으나 로마화재, 군부반란 등으로 폐위되어 자살하였다.

콜로세움- 정식 명칭은 플라비우스 원형 극장이다. 콜로세움이라고 부르게 된 이유는 아직까지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거대하다’라는 뜻을 가진 ‘콜로사레’라는 라틴 어에서 유래되었다는 설과 폭군으로 알려진 네로 황제가 세운 거대한 금도금 동상 ‘콜로소’에서 유래되었다는 두 가지 설이 전해질 뿐.

많은 검투사들이 싸움을 하다 목숨을 잃었던 콜로세움의 내부 모습.

로마의 개선문-콘스탄티누스 개선문이라 불림.

현재는 보수공사 중~

오드리헵번이 출연한 영화 <로마의 휴일>에 나왔던- 그 유명한 트레비 분수다. 모든 관광객들이 자신의 소원을 담아 동전을 던지는 곳이다.

얼굴 앞면을 둥글게 새긴 대리석 가면으로, 지름은 1.5m 정도이다. 기원전 4세기쯤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지만, 정확한 기원은 알려져 있지 않다. 강의 신 홀르비오의 얼굴을 조각한 것인데, 이 조각상이 진실과 거짓을 심판하는 ‘진실의 입’으로 불리기 시작한 것은 훨씬 후대의 일이다.
진실의 입이 있는 보카델라베리타광장의 ‘보카’는 ‘입’, ‘베리타’는 ‘진실’을 뜻하는 것으로 미루어 광장 이름도 진실의 입에서 유래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마리가(街) 산타마리아델라교회 입구의 한쪽 벽면에 있으며, 거짓말을 한 사람이 입 안에 손을 집어넣으면 손이 잘린다는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진실의 입’은 오드리햅번의<로마의 휴일 Roman Holiday>로 유명해진 이래, 로마의 명소 가운데 하나로 국내외에서 많은 관광객이 찾는다.

카라칼라 대욕장


2. 아테네(Athens)

기원전 5세기경 에게해 도시국가의 리더로 자리 잡아 민주주의, 철학, 올림픽 등, 아테네가 인류 역사에 끼친 위대한 업적은 많이 있지만 오늘날까지 그 힘을 발휘하고 있는 것 중의 하나는 민주정치이다. 민주정치(Democracy)라는 말은 그리스어 데모크라티아(Demokratia)에서 왔는데, 이는 ‘데모스(Demos, 민중)의 지배 체제(Kratia)’ 즉, 민중이 다스리는 정치 체제라는 뜻이다.

아테네 시 중앙에 우뚝 솟은 아크로폴리스는 도시 어디에서도 잘 보이는 아테네의 상징이면서 아테네의 역사 그 자체이다. 정상이 해발 156미터에 위치한 아크로폴리스는 아랫부분의 길이가 330미터, 윗부분의 길이는 270미터 그리고 폭은 156미터에 이르는 달걀 모양의 거대한 석회석 바위 언덕이다.1) 서쪽의 올라가는 입구를 제외하고는 세 면이 모두 깎아지른 바위 절벽을 이루고 있어서 고대 시대 이래로 그 자체가 천연 요새였다. 높다는 뜻의 ‘아크로스’와 도시국가를 뜻하는 ‘폴리스’가 합쳐져서 생긴 아크로폴리스는 ‘도시의 높은 언덕’, 즉 ‘성채’란 뜻이다.

아크로폴리스에는 신석기 시대부터 사람들이 거주했지만 문명의 손길이 닿은 것은 기원전 13세기 미케네 문명기이다. 그때 성벽과 왕궁이 세워졌다. 그러나 기원전 8세기에 폴리스 시대가 발전하면서 아크로폴리스는 인간의 영역이 아닌 신들의 영역으로 생각되었다. 기원전 6세기에 참주 페이시스트라토스가 신전을 건축했다. 그러나 페르시아 전쟁기에 페르시아 군대가 아티카 반도를 점령하고 약탈하면서 아크로폴리스 위에 있던 신전들도 파괴되었다. 오늘날 아크로폴리스에 남아 있는 신전 유적들, 즉 파르테논 신전·프로퓌라이아·아테나 니케 신전·에레크테움 신전은 모두 페르시아 전쟁 이후에 세워진 것들로서 아테네의 전성기를 반영하는 것들이다.

1987년 유네스코 문화유산 1호로 지정된 아테네-아크로폴리스는 파르테논신전, 니케신전, 에레크테이온신전과 두 개의 원형극장이 있다.


파르테논 신전

카리아티드6인의 여인상

헤로데니스아티쿠스 원형극장

3. 콘스탄티노플(이스탄불,Istanbul)

콘스탄티노플을 이야기 하자면 이스탄불부터 언급해야만 한다.

아시아와 유럽에 걸쳐 있는 터키 이스탄불은 동서양을 연결하는 곳답게 다양한 문화와 역사가 함께하는 도시이다. 크리스트교와 이슬람교의 생생한 흔적이 남아 있는 하기아 소피아 사원을 시작으로 세계 3대 모스크 가운데 하나인 술탄 아흐메트 모스크, 이슬람의 절대 권력자 술탄이 살았던 톱카피 궁전, 로마 시대 때 건설한 경기장 터와 수도교, 상상을 뛰어넘을 정도로 다양한 물건을 판매하는 거대한 시장 그랜드 바자르에 이르기까지, 이스탄불에서 만날 수 있는 유적지는 매우 다양하고 풍부하다.

이스탄불은 비잔티움에서 콘스탄티노플로, 그리고 이스탄불로 지명이 바뀌면서 세계사에 커다란 흔적을 남기기도 했다. 또한 크리스트교와 이슬람교가 격돌했으며, 동서양의 문명이 만나 독특한 문화와 풍습을 이루고 있다.

이스탄불은 비잔티움이란 이름으로 세상에 처음 알려졌다. 기원전 7세기 초 그리스 출신의 장군 비자스는 식민지 개척을 위해 보스포루스 해협 옆에 도시를 건설하면서 그리고 자신의 이름을 따서 비잔티움이라 불렀다.

혼란스러웠던 로마를 재통일한 황제 콘스탄티누스는 330년, 오랜 세월 수도였던 로마 대신 비잔티움을 수도로 삼았다. 그러면서 비잔티움이란 이름은 ‘콘스탄티누스의 도시’라는 의미의 콘스탄티노플로 바뀌게 된다. 수도가 된 콘스탄티노플은 곧 당시에 최고의 문화를 자랑하던 로마와 아테네에 버금가는 도시로 발전했다.

콘스탄티노플이 중심이 되었던 이때의 제국을 훗날 역사학자들은 비잔틴 제국이라 불렀고, 이때 발전했던 문명을 비잔틴 문명이라고 한다. 콘스탄티노플은 1천 년이 넘는 세월 동안 굳건하게 그 명성을 유지하다가 1453년 이슬람교를 믿는 메메드 2세가 이끄는 오스만 투르크 군대가 점령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메메드 2세는 새로 정복한 이곳을 이스탄불이라 명명한다. 비잔틴 제국과 문명을 상징했던 콘스탄티노플이 지도에서 사라지고 이스탄불이 등장하는 때를 학자들은 근대의 시작으로 보고 있으며, 1453년부터 부르게 된 이스탄불이란 지명은 오늘날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콘스탄티노플의 점령과 이스탄불로의 개칭, 오스만 수도의 이스탄불 이전은 오스만 역사에서뿐만 아니라, 나아가 세계 역사에서도 한 획을 긋는 큰 사건이었다. 이미 동방과 접경한 비잔틴이, 흔히 서유럽 인들이 종교적 적대 관계에서 과소 평가했던 것과는 달리, 수준 높은 독특한 문화권을 형성하고 서유럽에 영향을 끼쳤던 것처럼, 이제 유럽은 오스만 제국이라는 동방 문화권과 직접 접촉함으로써 동방의 새로운 기운과 문명을 급속도로 받아들이게 되었으며, 이로 인해 곧바로 르네상스가 시작되었다.

위대한 역사도시 콘스탄티노플

“하기야 소피아” 천장의 아름다운 문양

“하기야 소피아” 정원에 세워진 수돗가

오랜 세월 이스탄불의 상징이 되어온 “하기야 소피아”

비잔틴 제국때 세원진 발렌스 수도교

톱카피 궁전 정문에서 바라본 “하기아 소피아”

황금 모자이크 작품 <만물의 주, 예수>

팔레르모늬 팔라티나 예배당의 모자이크 : 위대한 성 바실리우스와 콘스탄티노플의 성 요한 크리소스무스

4. 바빌론(Babylon)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발상지로 지금의 이라크에 위치.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공중정원(기원전 6세기 전후)이 특히 유명하다.

5. 쿠스코(Cuzco/Cusco)
15, 16세기 잉카제국의 수도로 페루 안데스 산맥의 계곡 안에 있다.

6. 테노치티틀란(Tenochtitlan)
15, 16세기 아스테카왕국의 수도.

7. 테베(Thebes)
이집트 나일 강 하류, 왕들의 계곡이 있는 도시.

8. 그레이트 짐바브웨(Great Zimbabwe)
짐바브웨에 있는 거대한 돌의 도시.

9. 시안(西安)
고대부터 당나라까지 1.000여 년간 중국의 수도였던 곳.

10. 카호키아(Cahokia)
12∼18세기 미국 미시시피 강의 인디언들이 생활했던
둔덕(높이 30m) 형태의 주거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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