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성과 대중성 사이 부끄럽지 않은 어느 곳

알파고가 큰 이슈가 되며 “인공지능 전문가”를 자처하는 많은 사람들이 언론에 나와 인터뷰를 했다. 사실 그들 대부분은 인공지능 전문가도, 바둑 전문가도 아닌 “인터뷰 전문가”인 경우가 많았다. 신문에 칼럼을 기고하는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다. 앞에 무슨 단어가 붙었든 칼럼리스트는 “칼럼전문가”일 뿐, 해당 분야의 전문가는 아니다.

누구에게나 시간은 한정되어 있는지라 한 사람이 전문성과 대중성 모든 것을 가질 순 없다. 아무리 전문성이 높던 사람이라도 그 사람이 유명세로 바빠지고 이곳저곳 오래 불려다니다 보면 그 사람의 전문성은 어느새 전문성이 아니게 된다. 위기감을 느낀 왕년의 전문가는 급히 최근에 핫하다는 ‘머신러닝’ ‘딥러닝’ ‘인공지능’과 같은 기사들을 허겁지겁 섭렵하고, 그렇게 남들이 겉핥은 기사를 다시 겉핥아 오합지졸의 수식어만 조합해 자칭 “왕년의 전문가”들이 재탄생 하는 것이다.

충분히 이해한다. 나 역시도 회사생활을 해봤지만 그 때 느낀 느낌은 너무 바빠 나 자신을 채울 시간 없이 쪽 빨리기만 한다(?) 예전에 배운 것들이 소모되기만 할 뿐 그걸 채울 시간이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 점점 커져가는 배고픔과 부끄러움을 견딜 수 없어 회사를 나왔다. 그리고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하지만 이런 선택이 꼭 정답은 아니며, 지금도 끊임없이 “쪽 빨리기만 하며” 끊임없이 아웃풋을 내놓아야 하는 사람들이 많이 존재한다. 그들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하며, 계속 전문가여야 하는 왕년의 전문가들의 마음도 충분히 이해한다. 나라고 그렇게 되지 않으리란 법 없다.

하지만 그럴수록 더 솔직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실력 중 가장 중요한 실력은 “나 자신을 아는 실력”이다. 본인의 전문성이 구닥다리가 되어간다고 다른 포장지를 허겁지겁 씌우며 나 자신을 아는 실력마저 거짓으로 뭉개버리는 것은 본인을 별 볼 일 없는 인간으로 만드는 일이다. 적어도 그러진 말아야 한다.

인터뷰를 할 순 있지만, 인터뷰를 통해 본인이 아는 이상의 확신으로 사실이 아닌 것을 퍼뜨리는 일은 경계해야 하며, 이를 통해 전문가로 포장되는 달콤함 역시 멀리해야 할 것이다. 대중성을 갖는다는 건 그만큼 말의 책임이 커진다는 뜻이다. 모르는 것을 서슴없이 전파하는 부끄러운 사람이 되어선 안 된다.

우리끼린 충분히 이해한다. “교수”나 “소장”, “박사”란 타이틀이 먹히는 곳은 언론이나 대중일 뿐, 그들이 꼭 최근에 뜨고 있는 기술들에 대해 충분히 알고 있다는 뜻은 아니란 점 말이다. 나라면 차라리 해당 분야를 활발히 전공하고 있는 대학원생의 말을 더욱 신뢰하겠다. 나이가 들며 보는 시야가 넓어지고 관리해야 할 것들이 많아지며 새로운 기술을 공부할 시간이 부족한 건 당연하며, 그렇기에 그들의 분투와 괴리에 대해서도 이해해야 할 것이다. 그들의 삶은 잘못되지 않았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자신들이 잘 할 수 있는 본인들의 역할이 있다. 왕년의 전문가들이 잘할 수 있는 일은 머신러닝 책을 펴놓고 새로운 수식을 하나하나 이해하는 일이 아니다. 그분들은 이제까지 살아온 세월로부터 나온 식견이 있고 습득해온 다양한 관점이 있다. 오랜 시간으로만 얻어질 수 있는 그것을 매개로 새로운 신진 학자들/학생들과 겸손한 자세로 접촉하고 서로에게 배운다는 자세로 늘 함께한다면, 우리들은 그들을 존경해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생각만 해도 멋있다.

난 본인이 학문적인 깊이가 있다고 그저 “대중과학자”들을 아니꼽게 생각하고 비웃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동의하지 않는다. 그건 외국 살다 왔다고 뒷자리에 앉아 영어 선생님 발음이나 비꼬고 있는 학생과 다를 바 없다. 세상엔 깊이에 힘을 쏟는 사람이 있고, 넓이에 힘을 쏟는 사람이 있고, 전파에 힘을 쏟는 사람이 있고, 그리고 그 어느 것에도 힘을 쏟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그들 모두 살아갈 가치 있는 사람들이고 역할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나 역시도 주변에선 어떤 분야의 전문가로 보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훨씬 많이 아시는 분들이 보기엔 콧방귀 뀔 수준일 뿐일 것이다. 지금도 나를 고깝게 보시는 분도 많을 것이고 말이다. 여전히 전문성과 대중성의 사이는 나에게도 어려운 문제이고 미래엔 더 어려울 문제이겠지만, 그래도 난 늘 그 사이에 부끄럽지 않을 어느 곳을 고민하며 살 것이다. 페이스북에 필요 이상으로 많이 드러낸 지금 현재도 부끄럽지만, 그래도 이렇게 열심히 소통하는 이유는 내 부족함을 비웃는 사람을 신경 쓰기보다 나의 공유에 도움을 받는 사람이 크다는 생각으로 이렇게 떠들고 있는게 아닌가 싶다. 하지만 나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나 오해가 커질수록 나는 그것이 사기가 되지 않도록 노력해야겠고, 때로는 내 자신의 부족한 실체를 드러내는데 주저하지 말아야겠다.

이 글은 물 들어올 때 한참 노를 젓는 자칭 알파고 전문가들을 저격하고자 쓴 글이 아니다. 나 역시 로봇이든, 머신러닝이든, 수학이든, 바둑이든, 뭐 하나 제대로 알고 있는 게 하나도 없다. 하지만 내가 내 자신을 뻥튀기하진 않더라도 그것을 이용해 도움을 줄 수 있는 어느 지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늘 내 자리에서 세상에 기여하며 살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미래에도 이런 마음이 변치 않았으면 좋겠고, 늘 겸손하게 나 자신의 깜냥을 아는 왕년의 전문가로 늙도록 노력해야겠다.

원문: Terry Tae-woong Um님의 페이스북

커버이미지 출처: 국민일보

전문성과 대중성 사이 부끄럽지 않은 어느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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